책리뷰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를 읽고

글삶작가 2022. 1. 10.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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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쓰네토모

 

 

아침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있어야 무사로서 합당한 행동을 할수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당장 세상을 하직할수 있는 사람처럼 행하고 말하고 생각하라. 

이 책은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삶은 전쟁이고 잠시 머무는 곳이며 죽고나면 명성은 잊힌다." 고 언급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던데 정말 인생을 돌아보면 10년이 1년같이 휙 지나간것 같다.

20대 초반의 풋풋했던 시절도 단지 어제께의 일만 같은데 마치 손바닥에 움켜진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닿을수도 만질수도 없는 바람처럼 사라져갔다. 

내 머리 속에  안개뿌연 영상와 사무친 감정으로나마 남아있을 뿐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항상 인생을 더 잘살고 싶었다. 꿈을 꾸며 욕망하고 때로는 과한 욕심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 몇배의 상처를 받기도 그렇게 부질없이 살아왔던 것 같다.

어쩌면 쉬울수도 있었던 길을 욕망이라는 안대를 쓰고 먼길로 돌아온거 같다.

 

우리는 없는 것을 바라고 있는 무시한다.
삶은 그런식으로 소진되며, 죽음은 예기치 못하게 다가온다.

내 삶도 그런것같아서 섬뜩해지는 말이다.
나는 항상 없는 것을 갈구하고 사라지면 그것을 또 갈구하고 그리워한다. 없어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절절히 깨달으며..

죽은자는 아무말도 들을수없고 아무것도 느낄수 없기에 우리가 원망, 애도를 하든 찬사를 하든 그 자신에게는 아무 가치가 없다.

나도 죽는 게 두렵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같은 알람소리에 눈을 뜨며 늘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이 일상들,   그 일상들이, 아니 내자신이 사라진다는 건 어떤 일일지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다.

요즘 죽음에 대해서 많이 묵상하고 있던 터라 이 책제목이 눈에 확 띄었던 것 같다.

우리는 영원히 살것처럼 산다.  소중한 가족, 또는 누군가가 늘 있는거처럼 사소한 일에 짜증내고 다투며 살아간다.

인생이 유한한것에 대해서는 알면서도 막상 그 가족과 영원한 이별을 해야된다는 생각은 쉽게 와닿지못한다.

그 순간이 온다면 세상 무너질것처럼 울며 슬퍼하고 잘 못 대해준것에 대한 후회가 가슴에 사무칠거라는 시린 상상을 해본다.

가족들도 나도 모두 죽는다고 생각하면 나를 괴롭히던 사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내가 언제 죽을지 안다면 영원히 살것처럼 감정기복에 춤추지 않고 하루하루가 소중해 질것이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상처를 입기도 한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 상처를 피해 갈수 있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상처조차도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때의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 것인가 깨닫게 된다 .

때로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그 거리를 지나고 과거의 순간에서 다른 반응을 보이는 나를 상상한다.

아무리 억만장자라도 과거를 거꾸로 거슬러올라갈수는 없다.

과거는 돌아갈수없기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지금 내가 사는 현재는 가지고 있는 이미 손에 만져지는 것이기에 과거보다 덜 미화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의 나의 시야는 과거뿐만 아니라 죽음에까지 미친다. 부고를 들을때마다 현재의 소중함과 삶의 유한성에 대해 숙고하게된다. 삶의 시야가 넓어진다고 할수 있다.

상처와 관계의 단절,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하고 나서야 아픔과 함께 더욱 성장하는 것같다. 그와 더불어 삶의 시야도 확장된다.

과거도 아름답게 관조할수 있게되고 나쁜일보다 행복했던 일에 더욱 기억의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때 아무리 상처를 입었더라도 그때의 삶조차 심미적인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그 아름다움을 누릴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지도 모른다. 

상처와 아픔을 통해서 삶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에 준 상처는 반드시 나에게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따지면 내게 상처를 준사람도 똑같이 그 상처를 받게 될지도 모르니 억울해할 필요가 없을것이다. 

내가 언제 죽을 지모르지만 나는 늘 죽음을 경험하며 살아온 것이다.

10대의 나는 죽었고 20대의 나는 죽었고 30대의 나는 죽었다. 그러니까 40대의 나는 살고 있다. 

50대가 되면 40대의 죽은 나를 그리워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을 또 주먹에 쥔 모래알처럼 뿔뿔히 흩어진 시간들을 아쉬워 할런지도 모른다. 아 그때 더 잘할걸, 시간을 아낄껄, 곁에 있는 사람에게 더 잘해주고 화내지말았었어야 하는데 등등...

삶의 시야가 확대되면 때때로 과거의 상처도 드라마보듯 심미적인 향유를 하게 된다.  어쩌면 그 과거의 상처가 없다면 아름답게 향유할 대상 자체가 없는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로 키워준 과거에 지극히 감사하자. 

현재 죽지않고 꾸역꾸역 살아온 나를 만들어준 과거가 아무리 못났고 상처투성이라 할지라도 어여쁜 시선으로 바라보고 토닥여 주도록 하자. 

상처가 없다는 것은 인생이 빈 도화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용기가 없어서 망설이다가 놓쳐버린 순간들을 아쉬워하고 뒤돌아보지 말고 지금 이순간부터라도 실패를 누적하겠다는 마음으로 현재를 감사하게 살아내자.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 상처받으면서 나의 삶의 시야는 더욱 확대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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